[시린인생 <3>] 아빠의 뒷모습,


@ 용산가족공원,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아들아, 많이 아파서 그러는데 병원 예약 좀 해주라."
일하느라 바쁜데, 고민도 참 많은데,
이젠 '심지어는' 아빠까지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닿는 내 모습에 잠시 좌절을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시도한다. 실패한다.
우리나라 대형병원은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다.
거의 모든 곳을 뒤져서 당일접수가 가능한 한 병원을 발견한다.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아빠, 어디 가서 어떻게 하시면 되겠네요."
"응, 그렇구나. 고맙다..."
(쩜 세개만큼이나 왠지 모를 정적.)
"아, 제가 같이 갈께요."
"어, 그래주면 고맙지. 고맙다."

아빠는 변했다, 그러니까 변해있었다. 아니 어려졌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절대 아들 앞에서 나약한 모습 보여준 적 없었고,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에게 피해가 가거나 기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었다.

그런 아빠였다.
하지만, 지금의 아빠는 하은이만큼이나 약하고, (표현이 좀 그렇지만) 어리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나름의 자수성가를 통해 생존력을 키우고,
전후방을 넘나드는 34년간의 군생활을 통해 강인함을 키우셨다.

아빠는 그랬다.
강한 아빠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기억하는 한 나에게 딱 두 번 가량의 눈물만 보여주었었다.
(기침이나 하품, 그리고 간혹의 연속극을 제외하면.)

처음,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난 뒤, 할머니 제사에서.
그렇게 좋아하셨던 손자 모습 좀 보고 돌아가셨다면 좋았을 것을, 이라며.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참 많이 슬펐었다.)

그리고 두번째이자 마지막, 군생활의 꽃이라는 스타 입성에 실패했던 그 날,
기도 많이 해준 가족에게 면목이 없으시다면서,
(아빠의 눈물을 보며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많이 울었다.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병원에 같이 갔다.
그토록 강인했던 아빠의 모습에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곳이 병원이라고 알고 있는 듯한 4살짜리 꼬마아이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진료가 끝났다.
"상태가 그리 심각하진 않으니, 수술하면 문제없을 거고, 요즘 수술은 그리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난 뒤에야 아빠는 그 두려움의 60% 가량을 걷어낼 수 있었다.

이제 아빠가 아닌,
아버지로서의 고마움이 무엇인지 내가 깨닫게 된 시점부터
아빠는 나에게 아버지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부디 무사히 수술이 끝나서, 건강한 모습 되찾았으면 한다.
단,
어린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시라고.
몸은 완쾌되더라도 이젠 그러셔도 된다고. 더 심하게.

그것 참 씁쓸하구먼...

by nonwhat | 2009/11/09 00:26 | 그 런 얘 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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